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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문환의 하동편지 제184호 그 이발소에 가고 싶다
조문환 기자
2014-09-01 15:44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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벌초는 마치셨는지요?

어제, 오늘 온종일 귀가 따갑도록 산하가 요란스러웠습니다.

 

벌초하기가 쉽지 않은 시대인지라

“조상묘지 벌초대행”이라는 커다란 문구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.

 

말끔하게 이발하신 묘지들을 보면 저도 가슴이 후련하고 기분이 좋아집니다.

추석이니만큼 사람 뿐 아니라 산소들도 이발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.

 

요즘 시골에도 옛날 모습의 이발소를 찾아보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.

작은 동네에도 헤어디자이너가 파고들어 와 있고,

이발소도 많이 진화하여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.

 

하동에 있는 화개 삼신마을에 참 멋 떨어진 이발소가 있습니다.

50년 정도의 이발 경력에 아직도 성업 중인 이발소인데,

길을 지날 때 마다 저의 눈길을 사로잡는 마력을 가진 곳입니다.

 

어디, 저와 같이 들어가셔서 추석머리 한 번 잘라 보시지 않겠는지요?

그 이발소에 가고 싶다


 


 


 


먼당 동네어귀 신작로 곁


그 이발소의 유리창은 먼지로 침침했다


 


단 다섯 평도 안 되는 좁은 이발소는 사람으로 붐볐다


낡은 이발의자는 삐걱거렸고


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로 시작되는 푸시킨의 시가


삼류그림과 함께 떨어질 듯 위험스럽게 천장에 붙어 있었다


 


키 높이가 안 되어 나 같은 어린아이들은


삐걱거렸지만 푹신한 이발의자에 앉지 못하고


양쪽 팔걸이에 걸쳐 놓은 판자에 앉아야 했다


언제쯤 나도 푹신한 의자에 앉아 이발을 해 볼까?


 


이빨 빠진 바리깡은 한 번씩 내 머리를 뽑아가 눈물이 질끈 났지만


면도를 마친 아저씨는 옆자리에 누워 세상모르고 코를 골았다


 


슥삭슥삭 가죽에 칼을 갈고


면도솔에 비누를 비벼 목에 차가운 거품을 칠 할 때 그 움찔거림


 


오늘은 그 이발소에 가고 싶다



댓글

정을주고

이발소 비누거품 먹인 큰 붓으로 아버지 턱에 문지르고 면도칼날을 목에 대던 그 무시무시한 풍경 떠오르네요.. 그리고 이발소 벽에 붙어 있는 그림들..

2014-09-02 23:54